2024. 4. 16. 18:02ㆍ연극

Q. 극중에서 L은 다른 듯 닮은 세 가지의 사건에 대해 말한다.각 장을 통과할 때 감정과 톤의 변화는 어떻게 설정했는가?
(수빈) 연기의 톤을 어떻게 정하는지보다, 배우로서 내가 극중의 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만 명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정한 톤을 정해두면 연기가 그안에 갈혀 버린다. 글의 내용을 파악하고 캐릭터의 상태만 깊게 생각하려 한다. L의 세 가지 이야기 모두 하나의 맥락, 결국 관계와 존재에 대한 고민이다. 동시에 누구나 다 겪는 일이기도 하다. 이걸 보는 관객들도 자신이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 누구와 어떤 갈등을 겪고 있는지 떠올리겠지. 사회적 존재로서 관계 속에서 L이 느낄 흔들림에 집중했다. 전체적으로는 계속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파동에 내 존재가 흔들리는 상황이니까. 세 가지 이야기마다 연인한테 말하는 태도는 달라질 것 같았다. 처음에는 직장 내에서 회사원들이 자신을 갑, 나를 을로 지정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분노. 덧붙여 단순히 애인에게 내 일상을 공유하는 차원의 투정 부리고 싶은 마음. 처음에는 이런 느낌이 전반적이다. 두번째는 가족에 대해 고민하는 L이 연인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상황이다. 연인에게 더 의지하게 되는 순간으로 분석했다. L은 연인 M으로 인해 바뀐 삶의 부분이 많을 것이다. L이 자기 고민을 말하면 M은 그 자신의 언어로 위로해주고, 다시 설득하면서 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세번째 장에서 중요한 것은, 오랜 친구들과 L이 단지 성적지향만이 아니라 가치관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닫고 받아들일 때의 흔들림. 이 때는 L이 연인에게 답을 얻고 싶은건 아닌 것 같고, 혼잣말과 비슷한 상태다.

Q. M은 발화하기보다 텍스트를 흡수하는 쪽으로 보인다. 캐릭터 구현에 임하면서 가장 중요시한 점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무게를 획득하려 했나?
(미진) 단순히 텍스트 분량만 봐서는 L에게 무게가 치우쳐 있다. 하지만 이 극에서 M의 역할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캐릭터의 무게를 어떻게 잡을지 고민했다. 굳은 심지, 의지가 느껴지는 인물로 만들려 했다. 연기를 하다 보면 '에너지가 있네, 없네' 그런 얘기를 많이들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내가 그 감정을 진실되게 느끼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이성적으로 계산하는 거 말고, 내가 인물의 얘기에 귀기울여 순간의 감정들을 계속 알아가는 것. 내가 M에 대한 마음을 꾸준히 쌓아가는것.
Q. 극장이 아닌 아주 작은 공간에서 연기를 하게 되었는데, 연습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배우로서 주로 임하던 환경과 다른 장소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연기적으로는 어떤것들이 달라지게 될까?
(미진) 음 .., 특별히 어려운 점은 못 느꼈다. 공연을 하면 보통 세트, 무대를 만들지 않나? 반면 여기는 현실적인 공간이다. 현실의 공간이 주는 힘이 켰던 것 같다. 누군가 평상시에 입는 옷,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 같은 것으로부터 오는 에너지. 집에서 연기하는 게 색다르고 흥미롭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편안한 에너지를 받은 것 같다. 실제 공연에 대한 생각을 하면 물론, 여기 관객들이 꽉 차게 돌어오면 힘들 수도 있겠다고 걱정은 한다. 내가 관객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이런 고민... 불안감이 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시선 처리를 할 때나 침묵 끝에 관객이 눈에 들 어오면 어떻게 하지? 그런 디테일에 관한.

(수빈) 공연장은 보통 무대와 관객 간 거리가 있는데, 관객과 이렇게 가까이 있게 되는 것은 처음이라.. 돌발상황이랄까? 그들의 존재가 연기에 어떤 영향을 줄 지 걱정되기는 한다. 사람들이 영화를 라이브로, 눈앞에서 보는 거지. 그런 면에서 이번 작업은 연극이라기보다는 영화에 가까운 것 같다.
마지막 장면 이후 두 주인공의 삶이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극중에서 다뤄진 이 하루 이후 과 M 두 사람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배우들이 각자 자기 캐릭터의 (앞으로의)기분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미진) M에게 별다른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이 둘이 결국 어떻게 될지 나도 상상해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떠올랐다. '너는 나의 안식처야' 라는 대사를 읽고서 끝내 이 둘이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수빈) 나도 비슷하다. 이 극은 그냥 이들의 하루를 보여주는 거고. 일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L이 울고, M도 울게 되지만, 이것도 그저 흘러가는 단면에 불과하고, 잘 살아갈 거란 기분이 들었다. (미진) 외부에서 여러 사건은 발생했지만, 그게 이 두 사람 사이의 사건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거란 느낌.


Q. 배우와 연출자 간 대화(작품분석, 연습과정)에서 주로 어떤 것을 서로 주고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무엇이었나?
(미진) 이번 작업에서 좋았던 건 연출자가 한 가지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배우들이 여러 갈래로 고민을 하게끔 유도를 한 점이다. 그래서 나도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다양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이 효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품에 대해 연출자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데, 그 자신의 답만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게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그럴 때는 연기가 하나의 틀에 갇히게 되니까.

(수빈) 처음부터 한 가지 주제를 정하기보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대화를 폭넓게 나눴다. 나와 미진 배우는 퀴어 문제나 다양한 젠더에 대해 잘 모르던 상태라서, 연습 초반에 다같이 젠더 관련 스터디를 하고 생각을 나눈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런 시간 없이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폭이 좁아졌겠지. 연출자가 어떻게 사고하는 사람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상대 배우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시간이 주어졌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는 창작극이기도 하고, 그래서 작품에 대해 해석이 열려 있는 부분이 많아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루나) 작품 분석을 할 때 배우는 여러 상상을 동원해 캐릭터에 접근한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는
동화가 아니다. 나는 이 사회, 현실 속에서 관계맺고 있는 두 여자의 선택을 말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의 상상에 맡기기 이전, 연출자로서 기본적인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된 젠더 관련 스터디나, 동성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여러 시각들에 관한.. 현실 말이다. 각자가 목표하는 일정한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배우들을, 그들은 나를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연연습은 결국 설득의 연속이다. 연출자는 최대한 넓은 판을 마련하고 배우들이 스스로 더 잘, 더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다고 믿도록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연출자가 자신의 해석만이 절대적이라 여기면 길이 좁아져버릴 테니까. (FIN)

촬영 | NARCOS
배우 | 박수빈 송미진
special thanks to Helen Choi
Copyright 2018, LuNa & NARCOS All rights reserved.
연극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는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극] 남대문로 1길 9-1과 11 사이 (2023.11.24) (0) | 2024.04.21 |
|---|---|
| 원주민의 옷 (2017.10.21-10.22)극작/연출가 인터뷰2 : 루나 (0) | 2024.04.20 |
| 주시하는 몸(2021)_1.예고편 (0) | 2021.12.09 |
| 주시하는 몸(2021)_2. 본편 (0) | 2021.11.25 |
| 주시하는 몸(2021)_3. 연출노트 (0) | 2021.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