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시와춤 허수경

2025. 10. 27. 09:22시와춤

익은 속살에 어린 단맛은 꿈을 꾼다 어제 나는 너의 마음에 다녀왔다 
너는 울다가 벽에 기대면서 어두운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너의 얼굴에는 여름이 무참하게 익고 있었다
이렇게 사라져 갈 여름은 해독할 수 없는 손금만큼 아렸다
쓰고도 아린 것들이 익어가면서 나오는 저 가루는 눈처럼 자두 속에서 내린다 자두 속에서 단 빙하기가 시작된다
한입 깨물었을 때 빙하기 한가운데에 꿈꾸는 여름이 잇속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말 이전에 시작된 여름이었다
여름의 영혼이었다 설탕으로 이루어진 영혼이라는 거울, 혹은 이름이었다
너는 실핏줄의 메일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자두나무를 바라보았다
여름 저녁은 상형 문자처럼 컴컴해졌다 울었다 나는 너의 무덤이 내 가슴속에 돋아나는 걸 보며 어둑해졌다
그 뒤의 울음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자두뿐이었다

허수경_자두

 
 
 
 
 
 
 
 
*레지던시 일정으로 2주간 부산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만났던 다국적의 예술가들과 [시와춤]을 함께했다.
그날 동료들을 바라본 진행자, 관찰자 입장으로 기록 남긴다.

 
 
 
 
 
 
 
 
 
 
 
 
 








 
 
 
 
 
 
 
 
 
 
 
 
어떤 시로 진행할까 고민했다. 그의 시를 다국적의 예술가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위기 상황에 그의 시를 찾게 된다.  작품 [자두]는 그날의 날씨와 잘 어울렸다. 싱그럽고 보드라운 볕이 가을보다 사월, 봄 같았다. 자바라를 열어 스튜디오에 볕이 그대로 내려앉았고 강아지 강이가 이곳저곳을 오가며 사람들의 손길을 무한으로 받아내었다. 우리는 둥글게 앉았고 모두 맨발이었다. 누구는 어깨가 드러나는 민소매를, 누구는 팔이 드러나는 반팔티를 입었다. 나는 긴팔을 입었고 대체로 그러했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는 공유했다. 지내는 동안 나는 아무 곳에서나 누웠다.
 
 
 
 
 
 
 
 
 
 
 
 
 
 
 
 
 
 

 
안녕하세요

이번 세션의 이름은 시와춤 입니다. 
제가 시를 배우면서, 시에 대해 알아갈 수록 시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웠어요. 시를 이해하는 저만의 방법을 찾길 원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과 이 세션을 나누면서 시를 읽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같은 문학 텍스트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영향을 받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어, 문장, 이미지, 상상, 경험등 각자가 그 안에서 어떤 것들을 선택하거나 수용하고, 개인마다 각기 다른 어떤 것들에 의해 춤을 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춤을 추면서 시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이곳에는 언어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전달하는 문학성이 낯선 언어로 낭독, 혹은 청취되었을 때 평소 자신이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시로 출발합니다만,
여러분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쌓이면서 나의 몸안에 무엇이 남는지 바라보세요.
 

 
 
 
 
 
 
 
 
 
 
 
 
 




 
 
 
 
 
 
 
세 그룹으로 나누어 그들은 스튜디오에서, 나무아래에서, 잔디밭에서 낭독한다. 불안전한 떨어짐 사이로 그들의 목소리가 조용히 낭랑하게 겹쳐지고 흩어지길 반복하며 교묘하게 퍼진다. 서로의 목소리를 잘 듣기 위해 머리를 모은다. 눕는다. 눈을 감는다. 
누군가는 영어로, 누군가는 한국어로, 누군가는 스페인어로 낭독한다. 그들 곁을 맴돌며 그들을 본다. 평온한 얼굴들 사이로 나는  고양이처럼 잠시 머물렀다 떠나기를 반복한다. 낭독, 고요하나 조용히 역동적이다. 낭독의 중반부가 넘어가자 그룹마다의 색과 에너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에너지는 어떤 굴곡을 만들어 냈는데 그건 그룹의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 높낮이는 그들의 욕망과 닮아 있다. 
 
 
 
 
 
 
 
 
 
 

 
 
 
 
 
 
 
 
 

그들이 춤춘다
이것은 춤인가 호흡인가 아님 언어일까 단어일까 문장인가 물음이 사라진다. 그저 모두가 그 순간이 된다. [자두]로 시작해 같거나 다른 단어가 수십개 모인다. 그들이 쓴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단어를 본다. 곧 입을 열어 자신이 쓴 단어에 대해 말할 것이다. 나는 지속해서 그들을 본다. 나는 글로 기록하지 않는다. 들으면서도 남기지 않는다. 무척 날씨가 좋았다는 점과 그들의 표정이 사랑스러워 놓치지 않고 보고 싶었기 때문에 고개를 떨궈 쓰지 않았다. 나도 그들 곁에서 같이 공존하고 싶었다. 그들이 드러내는 감각을 동시에 감각하고 싶었다. 흥미로운 것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비로소 말한다는 감각에 준비를 하면서도 서서히 차오르는 것을 언어로 변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떤 감각에 대해 말했으며 진행하며 바뀐 몸에 대해 설명했다. 왜 이런 단어를 적게 되었는지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때론 많은 정보와 쌓이는 목소리가 조용히 몸을 압도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미지는 언어를 정복하는가 춤을 마비시키는가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가
 
 
 
 
그들이 남긴 단어는 시작과 다르다. 시어와 동일해도 그건 같은 단어가 아니다. 타인과 중복이 될 수도 있으며 왜 이 단어가 마음속에 새겨졌는지 의뭉스러울 수도 아무것도 쓸 수 없을 수도 있겠다. 나의 춤과 연결이 된다고 말할 수도 내가 시를 읽고 듣는 과정에서 무엇을 찾으려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그 끈을 놓아버렸을 수도 있겠다.
 







 
 
 
 
 
 
 
 
 
 
 
읽었고 들었으며 추었다
[시와춤]을 함께 해준 예술가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아름다운 그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의 아름다운 동료들에게 이 글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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