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 18:51ㆍ시와춤
그 돌.
내가 뒤따라갔던 공기 속의 그 돌.
너의 눈 마치 그 돌처럼 그렇게 멀어버린.
우리는
손들이었지,
우리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어둠을 퍼냈고, 우리는
여름을 돌아서 온 말을 발견했지:
꽃.
꽃ㅡ어느 눈먼 이의 말.
너의 눈과 나의 눈:
그 두 눈이
물을 주었지.
자라남.
가슴벽과 가슴벽마다
이파리들이 더해졌지.
이렇게, 한 마디 더, 그리고 종추들이
공기 속에서 흔들거리네.
Paul Celan_ 꽃/ 번역 허수경
[사랑을 너에게 배웠는데-허수경이 사랑한 시]p44-45 발췌
허수경시인의 작품을 다시 보다 허수경시인이 선별한 작품을 모아둔 책을 읽었다. 시인들의 시가 한 편씩 실려있고 허수경시인의 짧은 감상도 적혀있어, 덕분에 읽는 내내 허수경시인을 많이 떠올릴 수 있었다. 흥미롭다 그 사람의 취향이 담긴 어떤 것을 통해 그 사람을 떠올린다는 것은 때론 더 직관적일 때가 있다.

T와 나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연습실에 도착해서 몸을 풀었다. 늦은 저녁에 시와 춤, 오랜만이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오픈 워크숍으로 진행할 때는 늘 저녁에 했었는데 최근에는 [시와춤]은 낮시간에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천장고가 높고 한쪽의 벽면 전체가 통창으로 볕이 통째로 들어오는 이곳이 좋아서 이곳을 사용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낮에 사용했다. 통창 곁에서 가끔 실눈을 뜨고 구름을 보기도 했고 온몸을 빛으로 마주하며 뒹굴뒹굴 통창 앞에서 좌우로 구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춤춘다는 게 즐거웠다. 운영중단으로 이곳의 사용은 마지막이 되었고 볕이 사라진 통창에선 어둠이 더 짙게 들어왔다.
우리는 각자 말없이 스트레칭을 했다. 기온이 낮아진 탓에 쉽사리 웜업이 안되었다. 낭독할 때도 목이 잠겼고 똑똑히 발음하기 어려웠다. 나는 두 번을 낭독했고 T의 낭독이 끝나고도 우리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첼란의 언어는 나에게 구성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채광의 차이도 컸다. 나의 몸은 빛의 세기에 따라 다르게 발현한다. 계절마다 몸이 다르다. 그래서 이날의 시를 읽는 나의 몸도 다름을 느낀다. [시와춤]에서의 시는 전체적이고 복합적인 느낌, 그럼에도 선별적인 가능성을 주는 것이었다면 이날은 시 자체가 흔들렸다. 시를 그렇게 느낀 것인지 나의 몸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나는 불완전했다. 나는 T에게 말했다. 춤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도전력을 주는 시라고, 기존에 내가 습관적으로 해오는 것과 달리 다양한 갈래로 나눠지게 느껴졌고 그건 아마 첼란의 단어가 날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파편적인 첼란의 시어 속에서 나는 구체적이지 않음을 느끼는 동시에 구성적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었다. 대체로 나는 [시와춤]에서는 시어와 연결되는 구성적인 움직임의 발현은 피하려고 노력하는데 처음으로 떠오르는데 안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에 하게 되었다고-

돌
손
물을 주다
이파리
벽
종추들이
흔들린다
머릿속에 몇 개의 시어가 서클처럼 반복된다. 이 자체가 순환처럼 느껴진다. 일종의 관계처럼 말이다.
꽃은 절정의 상징이며 끝이며 시작이다. 그렇다면 이 순환은 꽃의 전후를 말하는가- 가슴벽과 가슴벽마다 라는 시구는 답답하게 체감되면서도 또 다른 생명력을 이끌어 내었다. 끝과 시작은 늘 동일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관계적으로도 설명이 된다. 어떤 공간, 지점, 관계 에서의 끝은 다른 땅을 밟게 하는 시작이 된다. 이유가 된다. 그렇게 발생되는 물리적인 종결과 도약이 순환처럼 다가온다.
L
[그 두 눈이 물을 주었지 ]라는 부분을 나는 네 개의 눈으로 느꼈어. 움직임처럼 - 이렇게 움직였어(손으로 크기를 보여주는)
우리는 눈을 눈이라고 말하잖아, 눈들이라고 하지 않잖아. 두 개의 눈이라는 건, 두 개 일까 네 개일까
프랑스어에서는 눈 하나와 눈 두 개, 그러니까 한 사람이 지니는 두 개의 눈기준으로 한 개 일 때와 두 개 일 때 철자가 달라. 재밌지, 이런 오해 때문에 명확하게 해 둔 걸까 라는 생각이 처음 드네. 넌 어떻게 느꼈어?
T
나는 네 개의 눈보다는 하나를 두 사람이 바라본다는 느낌이었어 (L: 나도 비슷한 느낌이었어) 두 사람이 하나로 보였고, 그 모습이 덩어리로 느껴지는 것 같아 (L: 하나를 같이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었다는 거지?) 맞아.

굉장히 말이 많았다. 보통은 많이 움직이고 적게 말하는데 이날은 적게 움직이고 많이 말했다. T는 가슴벽이라는 단어가 와닿았다고 했다. [가슴벽으로 자란다]라는 것을 떠올리며 만졌고 가슴벽은 생각보다 물렁물렁 한걸이라는 느꼈다고 가슴벽이라는 게 딱딱하고 부서질 것 같은데 신기했어라는 말에 나는 가슴벽이 딱딱할 수 있나 라는 문장이 스쳤다. 그러다 다시 가슴벽이 왜 딱딱하지 않다고 생각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해서 말하지 않았다. 물렁한 그 느낌, 만지는데 물렁하고, 느껴지네-라는 말을 반복하는 T를 보았다. 그러다가 잎사귀를 손으로 표현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마침 앉고 싶어 졌고 T의 그 장면을 목격했다. 나는 결정적인 장면을 포착하게 되는 행운이 있다. 여담이지만, 때론 그래서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보게 될 때가 있다.
T
[우리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어둠을 파냈고 우리는 여름을 돌아서 온 말을 발견했지]
두 손이 파내잖아, 근데 그것이 잎사귀가 되는 것 같이 느꼈고-,입도되고 어둠도 파헤치고,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꽃이 찾아오고- 바닥과 벽이 디디거나 (바닥을 만지며) 딛고 설 수 있는 게
바닥을 파헤치는 것도 꽃의 시간인가
그럼 다 꽃이라는 건가
(개인적으로 멋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사로 쓰고 싶을 정도로-)
L
가슴벽이 사이사이처럼 느껴졌어. 그 여백이 벽처럼 느껴졌지. 가슴벽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몸만 보여. 절단, 끊어진 관계.
그런데 그건 또 다른 순환을 말해. 그것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뤄져, 이파리가 그 증거야.
선택도 있지만, 그 이후에 선택들로 인해 수반되는 것들. 그래서 뭔가 움직임 구성적으로 만들 수 있다 있다는 생각도 이 반복성에서 느꼈나 봐. 처음으로 안무를 만들고 싶었어- 첼란의 시어가 날 그렇게 만들어. 문장이 존립하고 있는 힘 말이야. 흘러가는 느낌보다는 서클(손으로 큰 원을 그리는) 흘러간다기보단, 이미 정해져 버린, 하지만 정해진 방향은 다를 수 있지 라는 가능성을 내포해- 나에겐 그랬어. 이중적이지. 허수경 시인의 글에서도 시의 행과 행 사이에는 단어들만 존재한다고 말하잖아. 단어들이 뿜어내는 향기만이 존재한다고- 그 사이에 흔들리면서도 무엇보다 명확하게 존재해. 오히려 흔들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T는 소등하고 춤을 추고 싶다고, 그리고 내가 대화 중에 읊었던 몇 개의 시어를 다시 낭독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다고-
어둠 속에서
나는 첼란의 단어를 입으로 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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