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1. 17:44ㆍ시와춤


M은 노란 바지를 자주 입었다. 우리가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동네산책을 했었다. 그날은 볕이 따가웠던 5월의 봄이었고 더위를 식힐 겸 앉은 다리 밑 벤치에서, 노란색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남자를 함께 보았다. M과 나는 노란색 바지를 입고 다니는 누군가가 또 존재하는 것에 신기해하며 함께 웃었고 근처 내가 추천하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아이스 말차라테를 먹었다. 쌉싸름한 맛이 깊은 그 말차라테는 초록색보다 갈색빛이 돌았다. 난 그 맛을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카페인 때문에 자주 먹지 못 한다. M은 맛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서로의 이름에 얽힌 비밀을 나누며 크게 웃었다. M은 큰 소리로 입을 벌리며 잘 웃는다. 서울에서 호탕한 웃음을 찾기란 어렵다. 그 웃음을 보고 있으면 M은 언제고 서울을 떠날 수도 있다는 단서가 되기도 했는데 아마도 나는 그 웃음이 서울에만 있기에 아깝다 생각한 모양이다.
지금 M은 인도 어딘가에 있겠다.
우리가 봄에 서울 어디쯤 있었다는 흔적이 이렇게 남아서 좋다. 사람은 만나고 다시 흩어지나,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기록이 되겠다. 지금은 여름이고 나는 서울에 있다

시를 낭독 후 춤을 췄다. 그 후 우리는 다음 대화를 했다. 자연스러운 기록을 위해 어미를 다듬었다.
M 일단 너무 재밌었어요. 이 시로써 영감을 받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인 것 같아요.
처음에 저에겐 이 시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 서로의 심장을 어루어 만지는 연인들의 시간, 삶의 동적인 에너지랑, 어떤 죽음을 상징하는 에너지 두 가지가 느껴졌어요. 삶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춤을 출 때 어떨 때 추락하는 이미지, 기도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L 저도 모모와 비슷한 지점을 느꼈어요. '죽기 좋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 서로의 심장을 쓰다듬는 시간' 구
절에서 비슷한 에너지를 느꼈어요. 그리고 '짧고 간결한 체위로 이불을 끌어당겨도 낡은 침대 스프링은 튀어 오르지 않는군요' 이 문장에서 이불을 당기는 행위와 스프링이 튀어오르지 않는다는 상반된 움직임이 인상 깊었어요.
'새처럼 추락한다'인데 다시 보니 여자가 추락한다. 고 인식하고 춤을 췄네요. 춤을 추다 보면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를, 문장으로 저의 마음대로 바꾸는 것 같아요. 스프링 튀어 오른다와 추락한다가 연결이 되는 느낌도 들었어요. 곡선처럼요. 추락한다는 하강의 이미지임에도 다시 튀어 오름과 연결되는 지점이 신기했어요. 자연 발생적이랄까요. 모모와 컨택하면서도 여자가 추락하는 이미지를 계속 생각했어요.
M 저도 연결된다는 것 같았어요
스프링, 추격하는 것, 삶의 생명력과 꺼져가는 힘. 이런 것들이 재해석되었어요. 그래서 하나같이 느껴졌고요
L 제가 텍스트를 보지 않고 모모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하니 더 잘 기억에 남았어요. 텍스트를 보지 않고 낭독을 듣는 것,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단어는 제가 읽을 때보다 모모가 읽을 때 더 잘 기억에 남았어요. 내가 읽을 때 저런 문장이 있었나 싶어요.
컨택즉흥으로 연결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런 노력들이 과거에는 있었어요. 의도적으로 거부하려는 마음이요. 평소 [시와 춤]에서는 컨택즉흥으로 넘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는 컨택즉흥은 약속하고 만나잖아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시'가 배경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시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도 있으면 했어요. 시를 몸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는데 모모와 오늘 자연스럽게 즉흥컨택을 하면서 도움닫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모모랑 하면서 깨닫게 된 거죠.
M (크게 웃는) 저에게 영감이 되어 주었어요. 제 몸속으로, 제 경험으로, 마중물이 되어주는 느낌이랄까요.
L 컨택을 시작으로 하는 것과 시를 시작으로 하는 것이 몸이 느끼는 맛이 다르달까요-
모모랑 움직일 때 어느 순간 에너지가 같아지는 것 같았고, 순간순간 모모의 에너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 적도 있었어요. 몸이 느끼는 거죠.
M 예전에 제가 함께 통역을 도와준 '알레'라는 제 친구 워크숍에서 매일 마무리를 했던 활동이 이것과 비슷했어요
예를 들어, 오늘 하루를 몸으로 느꼈던 것 중에서 언어로 할 수 있는 것과 내 몸에 에 언어로 할 수 없는 것을 나눠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문장으로 만들어 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 문장을 노래의 첫 소절이라고 생각해 보고 세 명이 모여서 이것을 공유해요. 그것이 모티베이션이 되어서 서로가 지켜보고 춤을 추고 그랬어요.
L 아 그럼 한 문장을 들려주고 남은 사람들은 춤을 추고- 그런 식으로 돌아가면서요?
M 네 맞아요. 그 시간도 참 좋았는데 오늘도 시가 예술의 힘을 일깨워주는 시간이었어요.
시간과 공간이 나에게 자유를 준다고 느끼는 것처럼요.
L 우리가 시를 읽으면서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생긴다는 지점을 받아요. 시와춤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예요. 사실 그래서 많은 말이 필요 없기도 하고요.
M 처음에 루나가 시가 이해가 안되도 괜찮다고 한 말이 도움이 되었어요.
L 그래요? 다행이네요. 사실 처음에 저는 시를 배울 때 시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춤을 추는 것처럼 시를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 이 방법으로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으로 시인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M 흔들의자에 앉아 졸던 노인을 떠올리면서 저는 외할아버지가 떠올렸어요. 예전에 늘 대부분의 시간을 소파에서 티비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셨는데 사람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에요.
L 저도요. 창밖을 보는데 그 문장이 떠올랐어요. 오늘날이 너무 좋은 거예요. 오늘은 아닌가. 이렇게 날씨가 좋으면 죽기 좋은 날인가. 죽기 좋은 날은 어떤 날이지. 그런데 이렇게 날씨가 너무 좋으면 죽기 좋으려나. 죽는 날이 죽기 좋은 날일 수 있겠다. 이런 생각들이요
풍등/ 박은정
바람을 달려간다
뒤통수에서 열꽃이 파열되자
아이들의 윤곽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귓속의 바람이 이내 서늘해진다
늙은 포플러 나무 아래
온몸 붉게 물들이는 자벌레들
제 소원을 날려 보내며
명치끝이 뜨거워지는 것도 잠시야
날아가던 새들이 고개를 떨군다
먼지 덮인 형광등이 바람에 신음할 때
흔들의자에 앉아 졸던 늙은이는
죽기 좋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을 열면 검푸른 구두 소리
당신과 섹스를 하면 곤란한 기분이 들어
배롱나무 잎사귀는 오래 흐늘거려요
알사탕을 빨던 사제가 기도를 한다
짧고 간결한 체위로 이불을 끌어당겨도
낡은 침대 스프링은 튀어오르지 않는군요
쫓기던 아이들이 절벽을 뛰어내리고
불의 사제를 꿈꾸던 자들의 노래가 들려온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봐
낙원의 구덩이가 혀를 빼물고 타오르자
세 치의 소원들이 불속을 걸어나오고
온몸에 살이 차오른 연인들이
서로의 심장을 쓰다듬는 시간
마지막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팔랑거리는 동안
사제의 담배가 길게 타오른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휘청이던 여자가
풍등, 새처럼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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